이적생의 이야기 12 "수학, 그리고 절망, 부끄러움"


이적생의 이야기 12 "수학, 그리고 절망, 부끄러움"


"2월 16일 수요일, 학원에서 첫째 날"


아침 6시, 알람이 울린다.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 오늘부터, 학원을 가는 것이다. 이 시간에 버스를 타보는 건 처음인 듯하다. 아니, 평소에 버스를 탈 일이 거의 없었다 보니, 버스를 타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색했다. 급행 2번 버스를 타고, 반월당을 지나서 대구은행 대구 본점 앞에서 내린다. 그리고 다시, 거기서 환승을 한다.


학원으로 출근을 한 첫날. 이제부터는 이 길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 수능까지는 채 1년도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린 친구들 틈에 끼여서 학원으로 들어간다. 이 나이를 먹고 학원으로 들어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민망했다. 그래도 별 수 있겠는가… 현실이 이런 것을… 1층으로 가서 저번에 상담을 했던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니, "그래~ 잘 왔다."하고 반겨주신다.




저번에 상담을 했을 때 배정된 반에 넣어주신다고 하고, 서류를 마저 작성하고, 필요한 교재 목록을 받는다. 교재는 학원 바로 옆에 있는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고 했다. 강의실이 꽤 높은 곳에 위치해있었기에 우선 책을 먼저 구입해서 가야 할 것 같았다. 역시, 개강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서점에는 책을 사는 학생들로 붐빈다. 줄이 상당히 길었지만, 미리미리 필요한 교재를 묶어서 준비를 해 둔 서점 아주머니 덕에, 그리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선택과목 교재를 구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교재는 거의 10권이 넘었다. 아무래도 자연계다 보니, 수학만 무려 4권이었고, 영어도 약 3권 정도 되었다. 국어교재도, 당연히 많았고 말이다.


교재만 해도 10만 원이 훌쩍 넘어버렸다.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서, 교실로 향한다. 교실은 꽤 높은 층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계단으로 걸어서 올라가는 건 거의 포기를 해야 할 듯했다. 아무래도 가장 낮은 수준의 반인 연고대반이었기 때문에, 가장 올라가기 힘든, 불편한 교실을 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서울대특반이나 서울대반은 비교적 저층에 자리를 잡고 있을 것이다. 교실에는 많은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직 정규수업이 시작되지 않은 자습시간이라, 학생들이 조용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침에 수강 등록을 하고 교재를 사 오는데 시간이 걸린 탓에, 이미 좋은 앞자리를 자리가 다 차 버렸다. 어쩔 수 없이 뒤쪽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다. 나이에 맞지 않는 일을 하려고 하니 힘이 드는 것 같다. 다들 20살, 21살쯤 되는 어린 친구들인데, 나 혼자 나이가 많은 사람이니… 부끄러웠다. 패배자의 심정이었으니, 고개를 들고 다니는 것도 힘들었다.

수능을 칠 때까지는 별 다는 도리가 없으니, 수능 시험을 칠 때까지는 열심히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내일은 일찍 와서 꼭 앞자리를 사수해야지…'


자리를 잡고 사 온 교재를 훑어본다. 책상은 고등학생용 책상이라 정말 좁았다. '예전에 어떻게 이런 책상에서 공부를 했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경북대학교 도서관이 정말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린다. 항상, 평소에는 잘 모르다가 멀어지고 나서야 중요함을 알아차리는 것이 아닐까?


교재를 살펴보니, 수학은 책을 읽어도 잘 모르겠다. 수학을 공부하지 않은지가 너무 오래된 탓도 있을뿐더러, 예전에 중, 고등학교 시절에도 수학은 잘 못했었기 때문이다. 영어는 그나마 최근까지 공부를 했던 탓에 비교적 할만했으나, 수능식의 문제에 다시 적응을 할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언어영역의 경우는, 예전에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정말 잘했던 과목이었으나… 공백이 너무 컸던 탓인지 쉽지가 않았다. 예전에 있었던 감각이 다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담임 선생님이 들어온다. 오늘 시간표를 적어주고 나가려고 한다. "증명사진 가져오라고 한 거 제출하세요." 담임선생님이 말한다. 처음 상담을 받았던 날 학생증을 만들기 위해서 증명사진 2장을 가지고 오라고 했었다. 때마침 가져온 탓에 제출을 했더니, 담임 선생님이 나를 훑어보더니 이야기를 하신다.


"너구나, 승찬이가 이야기했던 얘. 그래 이따가 이야기 한번 해보자."

"저기… 그런데 시간표는 어떻게 보는 겁니까?"


시간표를 축약해서 적어뒀던 탓에, 어떤 것이 어떤 시간인지 잘 알아보기 힘들었던 탓에, 내가 물어봤던 것이다.


"아, 이거 약자, 수진, 이건 수학, 진만영, 이건…"

"그런데 교재는 어떻게 알아봅니까?"

"교재? 그건 그냥 옆에 얘들 꺼내는 것 보고 눈치껏 꺼내."

"…"


그렇게 담임선생님은 나가셨고, 9시쯤 되었을까, 수업이 시작된다. 오랜만에 좁은 책상에서 공부를 하려니 쉽지가 않다. 시간은 흐르고 흐르고, 점심시간이 된다. 학원에서의 시간은 정말 잘 갔다. 수학이 가장 급했던 탓에 시간이 날 때마다 수학을 봤는데, 조금만 고민을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그렇게, 정신없이 있다 보니 점심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점심은… 당연히 혼자서 먹어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는 다른 학생들도 혼자 먹는 것 같아 보인다. 아직까지는 서로 친하지 않은 상황인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딱히 할 이야기도 없고, 수학 공부를 하는 것이 급했던 탓에 밥을 쓸어 담고, 다시 책을 꺼내서 문제를 풀어본다.


수학… 이 녀석을 넘지 못하면 올해도, 아무것도 못 건지고 돌아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수업이 시작된다. 오후 수업도 역시 금방금방 지나가버린다. 평소에 경북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때, 몇 시간씩 앉아서 하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이제 한 시간짜리 수업은 금방금방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오후 수업은 끝나고, 자습시간이 찾아왔다. 학원에서 자습시간은 꽤 많은 편이었다. 수업시간과 자습시간의 비율이 비슷한 것 같았는데, 그런 편이 내게는 더 괜찮았다. 복습을 하지 않으면 공부는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자습시간이 되어서, 잘 되지 않는 수학 문제를 물어보려 교무실로 내려갔다. 교무실에서 담임 선생님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 상담을 받았던 '박승찬' 선생님이 있었던 탓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물어본다.


"그래~ 잘 하고 있구나." 승찬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저기 이걸 잘 모르겠어서 그러는데 말입니다…"

"이건… 이렇고…"


친절하게 잘 알려주신다. 물론, 아직까지는 난 확실한 감이 잘 잡히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러고 있으니, 담임선생님이신 '진만영'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진만영 선생님은, 포항공대 수학과를 졸업하신 분이었다. 푸근한 인상과 함께 마음씨도 푸근하신 분 같았다. 수업도 이해할 수 있게 천천히 해주셨고, 괜찮으신 분 같아 보였다.


"그래, 너 잘 왔다. 안 그래도 이야기를 좀 하려고 했었는데." 진만영 선생님이 내게 말한다.

"여기 앉아봐."

"너 몇 살이냐?"

"28살입니다."

"뭐하다가 지금 왔어?"

"저기, 지금부터 수학 시작하면 올해 수능에는 어디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내가 알 수 있는 바가 아니지, 우선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한번 해보자."

"네, 알겠습니다."

"그래, 이제 자습시간 끝났으니까 올라가자."


다시 저녁시간이 찾아온다. 혼자서 밥을 먹고, 수학 책을 꺼내서 보고 있다.

수업이 끝나고 저녁 자습시간에 담임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더니 내게 말한다.


"너 선택과목 화학 1이랑 2 하는 거지?"

"네."

"그럼 너 반을 옮겨야 할 것 같은데, 우리 반에는 화학 수업이 없어."

"…"

"선택과목을 바꿀래?"

"아… 그게 제가 화학 2를 이미 거의 다 하고 온 상황이라…"

"그럼, 반을 옮기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는데."

"네…"

"그럼 내일부터 너는 옆반으로 가라. 내가 반을 옮겨줄게."


그렇게 하루 만에 기껏 적응했던 반이 바뀌게 되었다. 밤 10시, 하루 일과가 끝이 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하루가 금세 흘러버렸다. 학원에서의 생활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새벽부터 일어나자마자 한 곳에서 생활하면서, 다른 건 하지 않고 수업을 듣고 책만 봤으니… 하루 종일 정신이 몽롱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첫째 날이 흘렀다.




"2월 17일 목요일, 학원에서 둘째 날"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아침이다. 다시 하루가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나는 건 항상 힘들다. 평소에 일어나던 시간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요즘의 상태는 항상 약간 몽롱한 상태다. 게다가 학원은 뭔가 감옥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기에,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늘부터는 옆반으로 반을 옮기게 되었다. 학원에 일찍 도착하게 된 관계로, 앞자리를 무난하게 맡을 수 있었다.

정 가운데 맨 앞자리, 고등학교 3학년 때, 내가 1년 동안 앉았던 자리와 똑같은 위치였다. 자습을 하고 있으니,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이 반 담임 선생님도 역시 수학선생님이시다. 하지만,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말하는 것도 가벼운 느낌이고, 속칭 말하는 '양아치'에 가까운 느낌이다. 나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물으신다.


"니가 옆 반에서 온 얘냐?"

"네…"

"얘기 좀 하자, 나와봐라."

선생님이 나가시고, 따라 나간다.

다짜고짜 말씀을 하신다.

"몇 살이냐?"

"28입니다."

"무슨 생각으로 왔냐 너?"

"…"

"수학은 좀 하냐?"

"전혀 못합니다."

한숨을 쉬신다.

"그래 이따가 이야기하자. 들어가 봐라."

"네…"


들어가서 자습을 한다. 조금 지나니, 수업이 시작된다. 국어, 영어, 수학 등의 속칭 메이저 과목은 매일 있는 듯했다. 오늘 가장 인상 깊었던 수업은, 국어수업이었다. 열정이 가득한 꽤 젊으신 선생님이셨는데, 수업을 하던 중 갑자기 나를 보고 묻는다.


"저기 혹시 몇 살이십니까?"

"28입니다." 내가 대답한다.

"잠깐 일어나 보시겠습니까?"


책상에서 몸을 빼내서 일어나니, 갑자기 달려와서 나를 안는다.


"힘내십시오!"


그리고는 수업을 계속 진행한다. 수업시간 1시간 내내 열정으로 가득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담임선생님의 수학 수업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내가 다 잊어버려 생각이 나지 않는 삼각함수부터 진도를 나가는 것에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담임 선생님이 이야기를 좀 하자며 나를 부른다. 담임 선생님은 나를 상당히 부정적으로 바라보셨다.


"대체 승찬이가 너한테 어떤 희망을 준거냐?" 담임 선생님이 말한다.

여기서 승찬이는 내가 처음에 상담을 했던 선생님이다.

"지금 와서 수능을 공부하는 건 내가 봤을 땐, 가망이 없다."

"…"

"차차리 편입시험을 다시 준비를 하는 게 더 맞지 않겠나? 난 그래 생각하는데."

"…"

"객관적으로 한번 보자, 니 올해 수능 쳐서 나올 수 있는 성적이… 언어 한 3등급 치고, 영어는 토익 900점이라고 했재? 그럼 1등급 치고, 수학 5등급쯤 나오겠나…, 나머지 화학 1, 2에서 1등급 나온다고 쳐도, 니가 갈 수 있는 학교는 계대 정도밖에 안된다."

"…"

"아니면, 방법이 하나 있지, 수학을 수리 나형을 쳐라."

"그러면 지원할 수 있는 과가 제한되어 있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아무리 봐도 지금 와서 수리 가형 치는 건 가망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냥 경북대학교 화학과 가서, 내년에 편입하려고 하는데 어떤 거 공부해와야 되는지 물어보는 게 더 맞는 일 아니겠나?"

"…"

"그래도, 이미 결정 내린 사항이라 번복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그래… 일단 수업 시작하니까 올라가 보자."

'정말, 해봤자 가망이 없는 건가… 갑자기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다.'


'정말 희망이 없는 건가…'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감싼다. 공부하던 힘도 슬슬 빠진다. 집중도 잘 되지 않는다. 수업시간에 이해를 하지 못한 삼각함수에 대한 부분에 대한 자료를 좀 구하려고 교무실로 가서 진만영 선생님을 찾았다. 사실, 희망이 없다면, 미리 포기를 하는 게 나을 것이다. 어차피 해봤자 안 되는 것이라면 말이다.

상담을 하고 나서, 거의 가망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나니,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담임 선생님은 없는 상황이고, 진만영 선생님에게 삼각함수 부분에 대한 자료를 좀 구해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노트북에서 자료를 검색해서 찾아서 프린트로 출력을 해주신다. 어제도 수업시간에 문제가 있었던 부분에 대해서 진만영 선생님을 찾아와서 자료를 받아갔었다. 아무래도 수학 1, 2과목은 중학교 기초수학은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상황이다 보니 그런 자료들을 구해서 받아갔었던 것이다.


"저기, 선생님이 보셔도 제가 가망 없어 보이십니까?"

"누가 그래?"

"아까 담임 선생님이랑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거의 가망이 없다는 식으로 말씀하셔서…"

"그냥 열심히 하라고 하는 소리지.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1등급 맞자고 하는 거 아니잖아, 하는 만큼만 하는 거지."

"…"

"이 짓도 6월까지만 하면서 고생하면 되니까, 힘내라."

"네…"


다시, 교실로 돌아가서 자습을 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어서 교무실로 내려온다. 담임 선생님은 이번에도 보이지 않아서 진만영 선생님과 수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담임선생님인 심상호 선생님이 들어온다.


"그래 잘됐다. 안 그래도 니하고 이야기 좀 하고 싶었는데."


담임 선생님은 이번에도 내게 수리 나형을 치는 게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하셨지만,

내가 수리 가형을 포기할 수가 없다고 하자, 이번에는 담임 선생님이 조금 누그러지시는 눈치였다.


"그래, 니가 그렇게 나오면 이제는 내가 도와줄 차례지."

"…"

"내일 하루만 더 있으면 주말이니까, 니는 다른 거 하지 말고 내일부터 해서 중학교 3학년 수학교재 구해서 주말 동안 그거 다 보고 온나. 안 그러면 내 니한테 아무것도 안 시킨다. 알았나?"

"일단 교재부터 구해야 되니까, EBS 중학교 교재 사서 그거 보고 와라. 내일은 니가 조퇴증 끊어달라고 하면 내가 끊어주게."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미션을 하달받고, 둘째 날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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