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이야기 "션에게 카네이션 한송이를 上"
A Carnation for Shawn Normandin
1
“Your yen two wol slee me sodenly;
I may the beautee of hem not sustene,
So woundeth hit throughout my herte kene. …”
“What does it mean?”
낮지만 날카로운 그의 목소리가 강의실에 울려 퍼진다. 오늘도 그는 퇴계인문관의 한 강의실에서 열정적인 강의를 하고 있다. 그의 수업은 물론, 보통의 일반적인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유쾌하거나 재미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진지함과 수업 준비에 진심을 다하는 모습, 그리고 수업 시간에 열정을 다 하는 그의 모습은 그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충분히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이름은 션 노르만딘, 영문학과에 얼마 있지 않은 외국인 교수 중의 한 명이다. 나이는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교수, 그의 인품이 워낙 훌륭하기로 소문이 난 탓에 그를 따르는 학생들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하지만,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서양인에 비해서 그의 외모는 썩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와 함께 수업을 들은 한 친구는 션 교수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교수님 보통 서양사람에 비해서 키도 그렇게 크지 않고, 머리가 좀 큰 편이잖아요. 목소리도 저희가 보통 생각하는 그런 톤도 아니고, 뭔가 조금 이상하잖아요. 그리고 매번 선글라스만 끼고 다녀서 눈도 안 보이고… 그런데, 수업 들어보니까 교수님이 너무 괜찮으시더라고요. 매번 밖에서 선글라스만 끼고 다니는 걸 보다가 안경 쓰고 눈을 보니까, 외모도 출중하신 것 같아요. …”
또 같이 수업을 들었던 다른 한 친구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션 교수님하고 결혼하고 싶어...”
션 노르만딘 교수님 사무실에 잠깐 볼일이 있어서 션 교수님의 사무실이 있는 국제관 앞을 지나던 어느 날, 국제관 건물 앞에서 션 교수님과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한 친구와 마주쳤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션 보러 갈까?”
그리고 또 다른 어느 날 저녁 국제관 앞에서 그를 또 만났다. 그리고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그냥 집에 가는 길에 션 교수님 한번 만나 보려고.”
션 노르만딘 교수의 인기는 영문학과 MT에서도 식을 줄을 몰랐다. MT에서 학생들이 교수님들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션 노르만딘 교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자연스럽게 션 노르만딘 교수에게 질문이 몰리게 되었고, 한 학생은 션 교수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다.
“혹시 본인이 톰 크루즈 닮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습니까?”
이렇듯 교내에서, 영문학과 내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는 상당했다.
그의 수업은 분명 재미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묘한 매력이 있었다. 아마도 그러한 묘한 매력의 원천은 그의 독특한 수업 방식 때문이리라, 사실 내가 영문학과로 들어오게 되면서, 영문학과 수업에서는 그냥 단순히 암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예전 다른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결같았다. 그저 발음기호, 문예사조 같은 것들을 외운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 역시도 그런 지루하고 단순히 열심히 외우기만 하면 되는 수업을 생각하고 들어왔었다. 하지만, 션 노르만딘 교수의 문학 수업은 달랐다. 내가 여태까지 들어왔던 그런 수업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때,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를 주제로 한 수업이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한 방송국에서 마이클 센델 교수의 강의를 녹화해서 방영을 했던 것이다. 그의 강의가 많은 인기를 끌었기에 사람들의 이목은 집중되었고, 그중에는 나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센델 교수의 강의를 통해서 철학에 대한 내용을 접하게 된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그 교수의 강의 스타일이 상당히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수업처럼 교수가 일방적으로 아이디어를 주입해주는 방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화젯거리를 이야기하면서 학생들의 생각을 물어보면서, 수업을 토론 형식으로 이끌어 가는 형식이었다. 상당히 많은 경험, 지식과 노하우가 있어야 이런 방식으로 수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션 노르만딘 교수의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먼저 놀랐던 것이 이러한 점이었다. 그의 문학 강의는 정해진 틀이 없는 듯했다. 시나 소설 등의 작품을 다루면서, 작품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수업 중에 질문을 하라고 했다. 그리고, 간혹 학생들에게 작품과 관련한 질문을 던지고, 학생들의 생각을 묻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질문에 대한 학생들의 답변에 대해서 한 번도 부정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는 학생들이 전혀 엉뚱한 답변을 했을 때도 말이다. 수업 중,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중세 및 르네상스 영시라는 수업 시간에 우리는 르네상스 시기의 한 목가 시를 다루고 있었다. 시의 장면은 한 여자를 두고 두 남자가 그 한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는 구절에 관한 것이었는데, 교수님께서는 지금 이 상황의 분위기가 어떤지 우리에게 물었다. 조셉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학생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Peaceful?”
아마도 그 장면이, 내가 처음으로 본, 션 교수님의 당황한 장면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롭다니, 일반적으로 그는 학생들이 아무리 예측하지 못한 대답을 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어떤 측면에서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해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이번에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 앞에서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Maybe…”라고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고, 헛기침을 하면서 겨우겨우 그 말을 무마시켰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음… 아마도, 첫 부분만 보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 그럼, 우리 여기서 시를 조금 더 읽어보면 어떨까? 음음…”
또 한 번은 수업 중, 이런 일도 있었다. 영국 문학 개관 첫 시간, 그 수업에서는 유난히도 학생들의 수업 참여가 상당히 좋았던 수업 중의 하나였다. 수업 분위기가 의견을 자유롭게 내는 상황이 되다 보니, 교수님께서도 신이 나신 듯하다. 그렇게 무난하게 즐거운 수업 시간이 되어가던 어느 날, 교수님께서 어떤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졌고, 한 학생이 조그맣게 들릴 듯 말 듯 이야기를 했다.
“@#@$?”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한 션 노르만딘 교수님은 천천히 방금 이야기를 한 학생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What did you say?”
교수님이 천천히 다가오자 당황한 그 학생은 차마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Sorry”.라는 한 마디 단어를 내뱉었다. 그리고… 갑자기 교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는 당황하며, 사태를 무마시키기 위해서 이야기를 해 나갔다. 내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들은 이야기는 대충 이러했다.
“음... 음… 굳이 수업 시간에 말을 하면서 참여하지 않아도 되긴 하지만, 한번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을 끝을 맺어주면 좋겠다. 문법이나 단어 같은 것들이 말로 표현하려고 하면 갑작스럽게 생각이 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충분히 감안해서 알아듣도록 하겠다.”
그만큼 그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은 존중하면서 수업을 이끌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
그의 수업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그의 성격이 워낙 진중하고 진지한 탓에 학생들은 간혹 이상한 오해를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 때, 교내에서는 ‘그가 뉴질랜드 출신이다, 북유럽 출신이다’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마도 이런 소문은 션 노르만딘 교수의 수업을 처음으로 들은 학생들이 교수의 발음을 듣고 어림짐작으로 추측해서 소문을 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간혹, 너무나도 진중한 그의 농담 때문에 이러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영문학에 관련한 수업 시간, 그는 “Norman Conquest”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 위해 칠판에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덧붙여 나갔다. “Norman”이라는 단어를 입에서 뱉으며 그는 이야기했다.
“Ah… They are my ancestors!”
그는 수업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농담 삼아 이러한 이야기를 했지만 그 날 이후로 그 수업을 들은 모든 학생들은 그가 북유럽에서 왔다고 믿게 되었다.
션 노르만딘 교수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을 때는 내가 이 학교에 들어온 지 꼭 1년이 되던 때였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저번 학기에 치른 기말고사와 기말 과제를 돌려받으러 그의 오피스를 방문하려던 참이었다. 때마침 그 해 새롭게 학교로 편입해서 들어온 친구를 만나게 되어서 같이 그의 사무실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는 몇 년간 미국에서 생활을 하고 온 친구였던지라 영어를 원어민처럼 능숙하게 하는 친구였다. 학기가 시작된 첫 번째 주였기 때문에 나는 이번에 들어온 친구를 션 교수에게 소개하여주었고, 그와 션 교수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I have heard that you are from New Zealand.” 친구가 션에게 물었다.
“Who said that?”” I came from Boston.” 션 교수가 대답한다.
그렇게 오랜 기간의 오해는 풀리게 되었다. 친구는 이번 학기에 션 교수의 수업을 3개나 듣게 되었다고, 그리고 이전에 문학 수업을 들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어떻게 준비를 할지, 수업을 듣는데 도움이 되는 책 같은 것이 있을지, 과연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 지에 대해서 걱정이 되는 부분을 션 교수에게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션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내가 여기에서 수업을 하고 있지만, 학생들이 수업을 들을 때는 잘 아는 것 같지만, 학기가 끝나고 나면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다음 학기가 되면 처음부터 다시 알려줘야 한다. 그래서, 결국 이전에 수업을 듣고 강의를 듣는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어쩌면 션 교수는 여태까지 학생들의 연기에 속아 넘어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왔다.
3
션 노르만딘 교수를 이야기하면서, 그의 시간관리와 규칙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는다면 그에 대해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은 것과 같다. 그의 시간 관리는 정말 철저하다고 할 수 있다. 1분 1초도 용납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통상적으로 그는 항상 수업이 있기 전 8분 전에 강의실 앞문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다. 한 손에는 서류가방을 들고, 손목시계를 차고 조용히 들어와서, 서류 가방을 컴퓨터가 있는 바로 옆 책상에 올려둔다. 그리고, 교실 뒤쪽에 결려 있는 시계를 한번 쳐다본다. 한숨을 돌리고 그는 정수기가 있는 쪽으로 물을 마시러 간다. 정수기 옆에 있는 종이봉투에 입김을 훅하고 불어넣은 후, 거기에 물을 2번 받아 마신다. 그리고 다시 강의실을 향해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다시 교탁 앞에 서서, 시계를 바라본다. 이때의 시각은 주로 수업 시간 3~4분 전쯤이 된다. 그는 교탁에 살짝 기대서 한 손으로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한쪽 손으로는 출석부를 만지작거린다. 수업 시작 1분 전, 그의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교실 뒤에 걸려있는 시계를 응시한다. 초침과 분침이 하나가 될 때, 그는 비로소 입을 뗀다.
“유비뤠이!”
“지아지위”
“배퉈이퉈이”
“유빗즈!”
사실, 그의 한국어 발음은 그리 좋지 않아서, 처음 출석을 부를 때는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출석체크를 마치고 난 후, 그가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강의실의 뒷문이 열려있는지 닫혀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강의실 뒤편의 문이 열려있으면, 그는 천천히 강의실 뒤편으로 걸어가 문을 닫는다. 절대로 학생들에게 문을 닫아달라고 시키는 법이 없다. 간혹, 뒷자리, 문에서 가까운 자리에 앉은 학생이 그의 의중을 눈치채고 문을 닫아주면 그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학생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Thank you.”
그의 시간 관리는 수업 전후에만 국한이 되지 않는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지금 시간이 몇 시쯤인지 알아맞힐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정확하다. 어쩌면 살아있는 인간 시계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12시 정각이 되면, 그는 사무실에서 외국인을 위한 학교 기숙사인 International House로 발걸음을 옮긴다. 점심 식사를 하는 시간인 것이다.
한 번은 졸업식 때, 그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졸업식이 있던 날 아침에 그의 사무실에 잠깐 들렀던 적이 있다. 아무래도 혼자서만 둘이서 사진을 찍고 나오기는 약간 아쉬웠기에 조금 있다가 같이 졸업하는 동기들과 함께 다시 찾아올 테니, 단체로 사진을 같이 찍자고 이야기를 드렸다. 그랬더니 그가 물었다.
“What time are you going to come here?”
“Hmm… I don’t know exactly. But maybe… before the lunch time?” 내가 다시 말했다.
“hmm…”
그는 원래 오전 11시쯤에 도서관에서 가서 자료를 찾으러 갔다가 12시에 평소와 다름없이 점심 식사를 하러 간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11시 이전에 사무실로 찾아오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다시 나는 이야기를 건넸다.
“Hmm… I am not quite clear whether I will be able to come here before the time with some friends of mine.”
그랬더니 다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내가 11시에 도서관에 가는 걸 안 가고, 12시까지 사무실에 있은 후에, 12시까지 안 오면 점심을 먹으러 가는 것이 어떻겠냐?”. 내가 다시 한번 망설이니, 그는 다시 한번 제의를 했다. “그럼, 내가 12시 30분까지 사무실에서 있으면 어떻겠냐?”그의 계속된 제안에 결국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사실, 언제쯤 같이 졸업하는 학생들과 함께 교수님의 사무실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 휴대폰 번호를 알 수 없겠냐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는 어쩌면 예상했던 대로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4
그는 휴대폰만 가지고 있지 않은 것만이 아니다. 간혹 나는 수업과 관련해서 그의 사무실을 방문하곤 했는데, 내가 2년간 방문했던 그의 사무실은 한결같았다. 다른 교수들과는 달리 그의 사무실은 한산했다. 사무실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사각형의 책상 하나와 의자 4개가 전부였다. 사무실 한쪽 귀퉁이에는 책장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는 영문학과 관련한 책들이 몇 권 꽂혀 있었다. 그가 사용하는 컴퓨터 한 대가 칸막이 뒤에 있었는데, 그가 그것으로 무엇을 하는지는 내 눈으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느 날 같이 중세 및 르네상스 영시 수업을 듣는 친구와 교내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조금 전에 션 노르만딘 교수의 사무실에 과제물과 관련한 질문을 하기 위해서 방문했었다고 한다. 그 날은 날씨가 매우 더운 한 여름날의 날씨였는데, 땀을 흘리며 그는 나에게 션 노르만딘 교수의 사무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오빠, 제가 오늘 션 교수님 사무실 방문했었는데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요? 하… 당황스러워서… 난감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그가 말했다.
“무슨 일인데?” 내가 물었다.
“제가 조금 전에 션 노르만딘 교수님 사무실 방문했었거든요. 그 우리 같이 듣는 중세 및 르네상스 영시 수업 과제 관련해서, 마지막에 있던 중세 영시를 현대 영어로 번역하는 것이 있어서 제가 그거를 어느 정도 해서 교수님한테 말씀드리러 가져갔는데, 교수님이 신나서, 하나씩 알려주시더라고요. 사무실에 있는 자기 컴퓨터로 중세 사전은 그래, 이렇게 하는 거야, 여기서 클릭해서… 앞쪽에서 찾기가 어려우니까 이렇게… 비슷한 것 찾고… 하나씩 한번 해보자, 하면서 자기가 컴퓨터 앞에 앉고 저는 뒤에서 서서, ‘네. 네’하고 듣는데 민망해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잠깐 이야기하러 갔는데, 1시간 넘게 그러고 있다가 왔어요. 그리고 3층까지 걸어 올라갔더니 땀이 너무 많이 나서 교수님이 자리에 앉았다고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는데도, 계속 있다가 가리고, 그래서 자리에서 있는데, 교수님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고, 괜히 눈 마주치면 민망해서, ‘헤…’하고 웃어주고, 교수님은 창가 쪽으로 가서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고… 엄청 민망해서 죽을 뻔했다니까요.”
개인적으로 만나는 그는 수업 시간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수업 시간에는 어쩔 수 없이 수업을 진행해야 하기에 말을 그나마 많이 하는 편이라고 한다면, 개인적으로 만나보는 그는 특별한 질문을 받지 않는 이상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성향인 것이다. 그런 그를 볼 때마다 나는 중세 수도원의 수도사가 떠오른다.
5
그를 볼 때마다 중세 수도원의 수도사가 생각나는 이유는 그의 철저한 시간관리와 무소유의 생활 태도뿐만이 아니다. 그의 복장 역시도, 항상 비슷하다. 그가 입는 옷은 항상 비슷하다. 평일에는 하얀색 또는 베이지색 계열의 셔츠, 그리고 면바지와 구두를 착용하고 다닌다. 수업과 관련된 서류, 자료를 넣고 다니는 가죽 가방, 그리고 가끔 쓰고 다니는 선글라스가 그의 패션 아이템의 전부다. 학생들 앞에서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항상 그렇게 다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어떻게 항상 같아 보이는 옷을 매일 같이 입고 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한번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했다. 간혹 이런 이야기가 들리기도 했다. ‘혹시 션 교수님 집에 가면, 같은 색, 같은 디자인의 셔츠가 여러 벌 있는 것이 아닐까?’ 가방도 같은 가방이 5개쯤, 구두도 같은 구두가 5개쯤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이야기도 돌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누구도 그의 집을 방문해 본 적이 없기에 단지 상상에서만 그칠 뿐이었다.
그의 패션은 평일에만 그런 줄 알았다. 그리고 학생들 사이에서 그의 주말 패션은 어떨지에 대해서도 궁금해하는 이야기도 돌았다. 주말에는 어떤 옷을 입고 다닐까에 대한 갖가지 추측이 오갔다. 하지만 우리의 여러 다양한 기대는 일요일 낮에 아내와 외출을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간혹 일요일 점심시간에 학교 근처의 식당에서 그와 마주치게 되면서 우리의 모든 상상이 빗나가게 되었다.
내가 보게 된 그의 주말 복장은 평일과 거의 흡사했다. 단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입고 있던 셔츠 하나만이 밝은 원색의 셔츠였다는 것이다. 파란색 셔츠, 그것 하나만이 유일하게 다른 점이었다.
그는 정말 모든 면에서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는 듯했다.
한 번은 우연히 친구와 학교에서 만나서, 정문 방향으로 함께 걸어내려오고 있던 날이었다. 거의 모든 수업이 마친 시각이라, 늦은 오후쯤 되는 시간이었다. 학교 정문을 지나치고, 혜화역 방향으로 걸어가던 우리는 학교 주변의 길에서 인근 마트에 들러서 장을 보고 나오는 그를 만났다.
“Shawn!!” 같이 내려오고 있던 친구가 멀리서 걸어오는 션 교수를 발견하고 크게 외친다.
“Ah… Hello.” 션 교수는 특유의 손짓을 하면서 인사를 받는다.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나는 듣고 있었다. 분명, 그는 마트에 들렀다가 오는 길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물론 그의 모양새도 딱 그렇게 보이기는 했다. 양손에 “코아마트”라고 쓰인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비닐봉지 속에 들어있는 물건이 심상치가 않았다. 비닐봉지 가장 위에 보이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책이었던 것이다. 그는 정말 말 그대로, 수불석권의 자세를 잃지 않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양손 가득 비닐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중세 수도원에서 생활하던 학자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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